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1식 전차 (문단 편집) == 개발 == 2차대전 전후 일본은 일본에 주둔하던 [[GHQ]]와 미군에 의해 [[M4 셔먼|M4A3E8 셔먼]]과 [[M24 채피]]를 공여받아 [[경찰예비대(일본)|경찰예비대]](이후 육상자위대로 개편)가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M4 셔먼과 M24 채피는 이제 성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신형 전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원래는 미국으로부터 [[M47 패튼]]을 들여와 무장하려 했고, 실제로도 연구용으로 1대의 M47 패튼을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상황에서 M47 패튼을 굴리기에는 교통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 무게가 40톤이 넘어가서 도로고 철로고 수송하기에 너무 무거운데다 좌우폭 초과로 열차에 실어나르는 것조차 힘들었고 도로로 운반하기엔 전쟁이 끝난지 몆년되지않아 매우 열악하여 기동하기 힘들었다.]가 있는데다, 당시 미국은 M47을 유럽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회원국들에게 우선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M47 패튼의 물량 부족도 우려되어 자위대에서 국산 전차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초기 개발 목표는 도로고 철도고 전부 열악했던 당시 일본의 인프라 사정상 무게 25톤에 90mm 포를 사용하는 것으로 요구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중량 20톤대에 76mm 주포로 무장한 경전차 급의 전차로 요구되었으나, [[한국전쟁]]에서 [[M24 채피|채피]]가 [[T-34-85]]를 상대로 힘을 못 쓰는 결과들을 보고 주포는 최소한 90mm여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따라서 90mm를 탑재하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전차 중량도 늘어나게 되었다.] 장갑 경량화가 추구된건 당시 열약한 도로 때문이기도 했고 전차의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한 이유였다. 하지만 25톤으로는 장갑이 매우 얇을 수 밖에 없어서 방어력이 너무 저하된다는 불만들이 나왔고, 당시 운용하던 M4A3E8은 이미 30톤대였기 때문에 새 전차의 무게가 30톤이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미국에서 샘플로 공여해준 국군이 운용하던 M36의 개량형인 [[M36 GMC|M36 전차]]를 베이스로 해서 연구하면서 90mm 주포를 분석한 결과 미국제 90mm M3 주포를 라이센스 생산하여 운용하는게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담으로, 해당 M36은 현재 쓰치라 전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955년에는 미국에 의해 신형 전차 개발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중형전차를 개발하려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는 2차 대전기부터 전차와 항공기 등 병기 생산 경험이 있던 [[미쓰비시 중공업]]에게 신형 전차 설계를 의뢰했다. 개발 기간동안 총 4가지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후 1961년 4월에 개발이 완료되며 '''"61식 전차"'''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사실 처음 받은 제식 명칭은 당시 자위대가 운용하던 [[M24 채피]]의 명칭인 "특차(特車)"와 비슷하게 61식 중특차(中特車)였지만 나중에 61식 전차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61식 전차가 한창 개발되던 도중에(STA-1, STA-2 완성 직전) [[헝가리 혁명]]이 발생하였고, 이때 [[T-54]]를 서방이 처음으로 노획하면서 분석된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서 더 강력한 주포가 필요하다고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과 예산 문제로 독자적인 대구경 포를 개발하는 대신에 신형 HVAP와 HEAT탄을 개발하는 것으로 T-54에 대항하는게 결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